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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컬럼 (송영일 목사) - “낄끼빠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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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코리안저널 댓글 0건 조회 252회 작성일 19-10-04 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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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에서 새로 유행하는 매우 흥미로운 사자성어가 있는데 “깔끼빠빠”라고 한다. “낄끼빠빠”라는 말은 “낄때 끼고 빠질때 빠져라”(Join into it when you have to do and get out of it when you have not to do.)는 말이다. 이 말은 매우 성경적인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된다. 지각이 있는 사람은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질 줄 안다. 앞으로 나갈 때가 있고 뒤로 물러설 때가 있다. 사람은 갈 곳과 가지 말아야 할 곳을 잘 가릴 줄 알아야 한다. 자고로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은 때와 장소를 잘 가려야 한다. 성경에서는 범사에 다 때가 있다고 말한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때가 있다.”(전3:1)
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고, 심을 때가 있으면 거둘 때가 있다. 허물었으면 또한 다시 세울 때가 있다. 울 때가 있으면 웃을 때가 있고, 슬퍼할 때가 있으면 기뻐할 때가 있다.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고, 사랑할 때가 있으면 미워할 때가 있다. 자식에게 회초리를 들 때가 있으면 끌어안고 마음을 감싸줄 때가 있어야 한다. 부부끼리 다툴 때가 있었으면 화해할 때가 있어야 한다. 이것이 인간의 삶이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낄끼빠빠”를 지혜롭게 잘 하신 분이시다. 예수님은 나서야할 때와 물러날 때를 잘 하셨다. 요한복음 7장에 보면 예수님의 형제들이 찾아와서 이제 그만 숨어 살고 유대로 올라가서 기적과 표적을 행하여 세상에 이름을 떨치라고 권면한 장면이 있다(3-4). 이제 출세를 할 때가 되었다는 뜻이다. 예수님의 형제들은 예수님을 세속주의자나 명예주의자로 오해하고 있다. 세상에 이름을 알려라 이제 출세를 할 때라는 말이다. 형제들은 앞으로 나가라고 말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뒤로 물어 설 때라고 하신다. 그래서 갈릴리 시골 마을에 머물러 계셨다. 예수님께서 유대로 가지 않고 갈릴리 시골에 머물어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다니시고 유대에서 다니려 아니 하심은 유대인들이 죽이려 함이러라.”(요7:1)
예수님은 때가 되기 전에 일부러 위험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셨다. 박해를 당할 때 구차하게 도망치는 것도 옳지 않지만, 일부러 박해를 받는 것도 지혜롭지 못하다. 유대로 가면 죽을 걸 뻔히 알면서 죽으러 갈 필요는 없지 있겠는가? 섶을 지고 불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예수님께서는 아무 의미 없는 무모한 죽음을 위해서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 하나님께서 죽으라 할 때에 죽으셨다. 사람들은 세상에서 출세하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예수님의 생각과 예수님 형제들의 생각은 너무나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 중심이었지만 형제들은 자기중심, 세상 중심이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셨지만 형제들은 하나님의 때를 알지 못했다. 형제들은 인본주의이고 예수님은 신본주의였다. 신본주의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 중심적이다.
예수님의 때는 언제인가? 하나님이 친히 정하신 시간이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예수님의 때는 예수님의 수난시기(受難時期)를 말한다. 그때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실 때이다. 피 흘리고 채찍질을 당하고 고난당해야 할 때이다. 십자가를 지고 죽어야 할 때이다. 예수님께서는 그 때를 기다리셨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때가 되지 않으면 결코 움직이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께서 머물러 있으라 하면 머물러 있고, 떠나라 하면 떠나는 사람이다. 아브라함은 갈대아우르를 떠나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실 때,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믿음으로 떠났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이다. 드디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가 되었다.
 “그 형제들이 명절에 올라간 후 자기도 올라가시되 나타내지 않고 비밀히 하시니라.”(요7:10)
예수님께서 유대로 올라가실 때가 되었다. 그런데 왜 유대로 올라가실 때에 공개적으로 나타내지 않고 비밀히 가셨을까? 떠들거나 소문을 내지 않으셨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를 했기 때문이다. 때가 이르기 전에 예수님의 생명을 함부로 내버리기를 원치 않으셨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으로 전도여행을 보내실 때 주셨던 주의사항을 기억하는가?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10:16)
예수님은 세상을 이리들이 득실거리는 곳으로 보셨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리떼들이 득실거리는 세상 속에서 살고 있는 양떼들이다. 잘 못하면 이리떼들에게 잡혀 먹힐 수 있다. 잡혀 먹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고 하셨다. 이것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지혜이다. 뱀의 지혜란 무엇인가? 먼저 뱀은 소리가 없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는 자랑하거나 떠들거나 소문내지 말고 소리없이 해야 한다. 그래야 이리떼의 공격을 피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께서는 유대를 올라가실 때에 떠들지 않고 소리없이 올라가셨다. 두번째로 뱀의 지혜는 낮은 자세로 움직인다. 낮은 자세와 겸손한 모습은 이리떼들의 공격을 피할 수 있는 지혜이다. 겸손은 공격을 피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지혜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려고 소리없이 행하셨다. 그렇다면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는 뜻은 무엇일까? “순결”이란 깨끗함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살면서 험 잡힐 일을 피하라는 말이다. 이리떼들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는 책잡힐 만한 일이 없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이 깨끗하면 공격을 피할 수 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이리떼가 득실거리는 세상에서 사는 지혜가 아닐까?
그렇다. 예수님은 겸손하셨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4:15)고 하셨다. 예수님은 죄가 있어 죽으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다. 다만 살든지 죽든지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셨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따라야 할 삶이 아닐까?
 

 
 
송영일 목사
휴스턴 새생명교회
832-205-5578
www.houstonnewlif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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