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 컬럼 (유양진 목사) - 흐르는 물과 같이 > 이민춘추-시ㆍ수필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이민춘추-시ㆍ수필

목회자 컬럼 (유양진 목사) - 흐르는 물과 같이

페이지 정보

작성자 코리안저널 댓글 0건 조회 240회 작성일 19-10-11 05:13

본문

우리가 미국에 막 도착했을 때 서울 역삼동에 있는 ‘서진 룸쌀롱’에서 조직폭력배들끼리 시비가 붙어 4명이 상대편에 의해 무참히 살해당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검거된 주범들은 사형선고를 받은 지 3년 만에 형이 집행되었는데 형이 집행된 그날의 기사를 메모해 둔 것이 있습니다. 그날은 모두 7명이 집행되었는데 그 중의 한명은 의자가 고장나는 바람에 기술자를 불러 의자를 수리한 다음 형이 집행되었다는 기사였습니다. 의자를 수리하는 시간은 30분 정도 걸렸는데 이 사형수는 그 과정을 지켜보았고 30분 후 수리가 완성된 그 의자에 앉아 형이 집행되었던 것입니다.
사형수들을 직접 관리했던 어느 교도관이 사형제 폐지에 관해 인터뷰하는 장면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사형제 폐지는 쉽게 다룰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지만, 그러나 그 교도관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물론 사형수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거의 모든 사형수들은 형 집행이 가까울 때면 어린 아이의 심정으로 돌아간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 그들처럼 맑고 깨끗하고 순진하고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없을 것이란 단서하에, 물론 죄의 값을 치르는 것은 당연하지만 저렇게 천진난만한 마음을 가진 저들을 꼭 형을 집행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지울 수 없다는 그 교도관의 낭낭한 목소리가 귀에 남아 있습니다.
수리를 마친 의자에 앉아 형 집행을 당한 그 사형수에 대한 아쉬움은, 그는 작동이 되지 않는 의자에 앉아 형이 집행될 때 그는 이미 죽은 사람이었습니다. 형이 집행되었는데 의자가 고장났다면 형집행관이 ‘이것은 운명이다’하고 대통령에게 상신(上申)하여 특별사면으로 그 사형수의 형 집행이 중지되고 사면했다면 어떠했을까? 만약 그가 형 집행 정지로 풀려났다면 그의 삶이 어떠했을지 눈에 선합니다. 그는 평생을 감사한 마음으로 그야말로 눈물이 흥건히 고이는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의 발부리에 채이는 돌멩이 하나가 예사롭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늘에 떠 있는 구름 한 조각이 그에겐 어떠했을까?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꽃 한 송이, 따끈한 숭늉 한 그릇, 그리고 뺨을 스치고 지나는 시원한 바람 한 점이 그의 삶을 풍요로 이끌었을 것이며 모든 것이 신비롭고, 그래서 온통 감사와 감격 속에서 하루를 살았으리라 생각합니다. 그의 삶에 무슨 미련이 남아 있겠으며 부질 없는 삶에 눈을 돌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생각건대 그의 삶은 마치 흐르는 물과 같이 막힘 없이 흘러가는 대로 살았을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 받은 자의 모습입니다.
사도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보내는 편지 가운데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했습니다.(엡2:5) 구원이라는 게 무엇입니까? 베드로는 ‘믿음의 궁극적인 목적은 영혼구원’이라 했는데(벧전1:9) 구원이란, 죄로 인하여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예수님이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으로 그를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영원한 생명’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느 사형수처럼 처형 직전에 있는 우리가 그것도 ‘영원한 죽음’ 앞에서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면, 그래서 영원한 생명이 주어졌다면 우리의 삶은 예수 믿기 이전의 삶과는 확연히 다름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바울이 말한 대로 ‘은혜로 구원을 얻은 자들’이라면, 그리고 그것이 확실하다면 우리의 삶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통 감사와 감격과 기쁨과 환희 속에서 오늘 이 하루를 살아 낼 것입니다. 만약 우리의 교회가 바울의 말씀대로 ‘은혜로 구원 얻은 자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그런 교회의 모습은 어떠할까? 가장 이상적인 교회의 모습을 보이리라 생각합니다. 교회 안에 갈등이 있을 리 없고 성도간에 물 흐르듯 막힘이 없는 성도의 교제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런 교회 안에 차이와 계층이 어디 있겠으며 너와 나의 구분됨이 어디 있겠습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만 있을 뿐입니다.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삶을 들여다 보면 예수님은 물과 매우 연관이 깊으신 분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처음 나타나신 곳은 요단강 가였습니다. 예수님의 처음 이적은 갈릴리 가나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든 것이었고, 예수님의 첫 개인전도는 수가동네 야곱의 우물곁에서 물 길으러 나온 여인에게 물을 매개체로 하여 자신이 그리스도임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다시 목마르겠지만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라 하셨고(요4:13-14),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하셨던 것입니다.(요7:37-38)
물은 형태나 모양 그리고 색깔과 냄새가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물은 담는 그릇에 의해 모양이 정해집니다. 우리는 가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고 궁금해 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것은 내가 결정합니다. 내가 어떤 사람이며 어떤 마음을 가진 자인가에 따라 하나님이 어떤 분으로 정해지시는지 다윗이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자비한 자에게는 주의 자비하심으로, 흠 없는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으로,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으로, 악한 자에게는 주의 분노를 보이시는 분’으로 나타나신다고 했습니다.(시18:25-26-현대인의 성경)
그리고 물의 또 하나의 특징은 흐름입니다. 그것도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낮은 곳으로 흐르다가 장애물이 있으면 돌아서 흘러갑니다. 흐르다가 패인 곳이 있으면 채워져서 흐릅니다. 가로막는 언덕이 있으면 이것 역시 채워져서 흐릅니다. 그 물이 채워질 때까지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흐르는 물은 반드시 채워지게 마련이고 채워지면 또 낮은 곳으로 흐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 물이 흘러 넘쳐서 다시 흐를 때 그 물은 땅을 적시고 이로 인해 풀과 나무들이 생기를 얻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합니다. 우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자들이라면 우리의 삶에 이와 같은 흐름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흘러보내야 합니다. 흐를 수 있도록 막힌 곳을 터 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살 수 있습니다.
목회했던 교회에, 어렸을 때 백인가정에 입양된 여자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의 성장과정에 우여곡절이 많았으나 그는 착한 사람이었고 매우 밝고 긍정적일 뿐 아니라 신앙적으로나 인격적으로나 정서적으로 균형이 잡힌 어른으로 성장했습니다. 결혼도 했고 간호사로 일하는 병원에서 모든 사람들로부터 칭찬듣는 그리고 사랑받는 집사님이었습니다. 병원에서 그가 하는 일은 생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는 환자들을 돌보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이 고된 일을 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쾌활함과 명랑함도 잃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통화가 되자마자 “목사님!”하고 심하게 흐느꼈습니다. 이렇게 곱고 착하고 명랑한 집사님이 울면서 전화를 하다니... 그가 울면서 전화한 이유는 자기가 돌보는 어느 환자때문이었습니다. 여느 때와 다름 없이 그 환자에게 상냥한 미소를 띠고 다가갔더니 피할 틈도 없이 뺨을 후려치고 얼굴에 침을 뱉았다고 했습니다. 왜 그러시냐고 물었으나 그 환자의 얼굴엔 노기가 서려 있을 뿐 아무런 이유가 없었습니다. 왜 그러시는지 이유를 모르기 때문에 더 황당했고 오늘이 두번 째라 너무 속상해서 전화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집사님, 그 환자가 그런 행동을 보인 것은 내가 생각건대 그는 이제 세상을 떠나기 위해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이고 젊고 예쁘고 활기찬 집사님은 그를 돌보는 간호사인데 죽어가는 자신과 화사한 얼굴로 친절을 베푸는 젊은 집사님과 비교했을 때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그런 행동을 보이신 게 아닌가 싶은데 옆구리를 터 놓고 마음에 담아 두지 말고 흘려 보내시라”는 말로 위로해 주었습니다. 이틀이 지난 후 또 전화가 왔습니다. 이번엔 아주 명랑한 목소리였습니다. “목사님, 오늘도 그 환자에게 맞았어요. 그러나 목사님 말씀대로 옆구리를 터 놓았더니 이젠 아무 문제 없어요. 오히려 더 잘해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감사합니다. 목사님!”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구원 받은 자들의 삶은 흐르는 물과 같이 살게 되어 있습니다. 막힘이 없습니다. 흘려보내지 않으면 나의 삶은 피곤해지고 지치게 될 뿐 아니라 내 속의 피는 썩고 뼈는 마르게 됩니다. 이 흐르는 물을 막고 고이게 하는 돌을 뽑아 버리고 흙무더기를 터트려야 합니다. 그래야 나도 살고 너도 삽니다. 흐르는 물과 같이 사는 사람들은 감출 것도 없는, 이미 밝은데로 나온 자들로서 투명하고 자유롭게 사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흐르는 물과 같이 사는 사람들은 멋있게 사는 사람들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누가 뭐라 해도 멋이 있어야 합니다.
 
 
 
유양진목사
909-635-5515
yooy002@gmail.com
  • 트위터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 게시물이 없습니다.

회원로그인

접속자집계

오늘
25
어제
14
최대
2,311
전체
987,818

그누보드5
Copyright © 소유하신 도메인. All rights reserved.